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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정보

중소기업 그래픽 디자이너의 현실

by 실버482호 2020.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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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중소기업이지만 사실은 10명이하 그냥 가게이다. 별다른 스펙이 없었던 나는 국가에서 100% 무료로 지원해주는 직업훈련학교에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우고 디자이너로써 취업을 했다. 사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 보면 우스울 내용이지만 뭔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친구들한테도 부끄러워서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포트폴리오는 허접했고, 내세울 스펙도 없었던 나는 첫 직장으로 작은 스타트업 옥외광고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옥외광고란 간판, 디지털광고물, 입간판, 현수막 등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광고물을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시안을 만들어주는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여기서부터 나는 디자이너로써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 신입으로 들어갔는데, 작은 회사이다보니 업무를 가르쳐줄 사수가 없었다. 시안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했으나 그 이외에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고객 및 거래처와 끊임없는 시안 수정 요청은 기본이고, 자재발주, 재고파악, 택배 업무, A/S 상담 이외에 회사의 잡무들까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손이 부족할 때는 들어오는 자재의 하차 작업도 해야 했으며, 작업실에서 손이 부족할 때도 불려 내려가서 잡무를 도와야했다. 그야말로 좃소기업의 서막이었다. 이렇게 일하고 받은 월급은 165만원이었다. 이게 불과 2년전일이다. 간판회사 같은 경우에는 제품이 만들어지고, 고가이기 때문에 단가도 쎄서 한 번 만들 때 실수없이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워낙 많은 잡무들이 폭풍처럼 쏟아지니 정신을 못차렸고, 실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근무 개월수가 늘어나면서 단순 시안 작업에서 설계까지 맡아야 했고, 캐드까지 배우라는 소리가 나왔다. 

사실 디자이너가 제일 욕먹기 좋은 직군이다. 작업실이야 데이터가 잘못됐다고 책임을 넘겨버리면 그만이고, 고객들도 잘못 나오면 왜 이렇게 시안을 만들었냐고 탓하기 바쁘다. 그런데 앉아서 근무하는 사무직이라는 이유로 되게 편하게 생각하고, 급여수준도 제일 짜다. 하루는 회사에서 중요한 일거리를 가져왔는데, 제품이 만들어지려면 시안이 나와야하고, 내가 먼저 일을 빨리 쳐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나는 자연스럽게 야근을 했는데, 이게 뭔짓인가 싶었다. 갓 들어온 신입직원에게는 너무나 과도한 업무량과 실력을 요구했다. 

야근 도중 더 이상 이렇게 근무하다가는 암 걸릴것 같아서 사직서를 썼다. "다음달까지 사람 구할때까지만 일하겠습니다" 사장님은 당황했고, 곧이어 면담제의가 들어왔다. 사장님도 내가 힘든줄 알았는 지 못 잡겠다고 말씀하셨고,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이 회사를 나오고, 정말 너무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았다. 20일 정도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했는데, 너무 미안했다. 나 대신 고통을 짊어질 그 사람이 왠지 불쌍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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